業務日誌

김대리의 희생양

오후3시 2011. 5. 3. 11:33


원래 김대리의 포지션은 외부 출장. 한달에 3,4일 사무실로 출근하는게 다였다.(덕분에 한달에 한번 돌아오는 생리보다 김대리의 사무실 출근하는 날이 스트레스의 최고조) 나머진 전국의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그런데 L과장 밑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운다는 포지션으로 회사에 (무려!)재입사 했었던 Y대리가 프로그래밍은 체질이 아니라며 깨끗이 항복을 선언했다. 김대리의 거래처들을 Y대리가 거의 흡수하면서 김대리는 내근직이 되었는데. 이게 1월 말. 나는 진지하게 이직을 고려했다. 김대리가 내내 사무실에 붙어 있는 것도 짜증나 죽겠는데 밥까지 같이 먹으려니 위장병이 생길 것 같아 4월엔 급기야 점심도시락을 싸오게 되었고 밥만 같이 안먹어도 위장병이 발발할 위험은 현저히 줄어든 듯 보였다. 게다가 조금 보탬이 되었던건 원래 김대리가 통화중이라면 L과장에게 돌리던 전화를 모조리 김대리에게 집중해 주었다. 네이트 뉴스나 들낙거리면서 뻘소리를 하려거든 차라리 일을 해라. 아마 저 눈치 없는 새끼는 그런 것도 알지 못하겠지. 훗훗. 그것이 내가 유일하게 김대리에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  

무튼 김대리가 내근직이 되면서 짜증이 났던 것은 나뿐이 아니었다. J부장은 계산기를 때려부시는 (...) 과격한 행동을 드러냈지만 김대리는 왜 자신에게 J부장이 화를 내는지 몰라 더욱 화를 돋구었고, L과장은 득도라도 한 듯이 하루종일 쫑알쫑알 대는 김대리에게 싫은 소리 한번 못했다. 그리고 김대리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는 사무실 막내인 K. K의 원래 자리는 창가쪽이지만 지원팀의 자리 배치는 네명이 각각의 모서리를 차지하고 서로 등을 마주하게 앉는 구조로 되어있다. 네개의 모서리를 각각 1,2,3,4 라고 한다면 창가를 향해 보는 쪽이 1,3 이에 등지고 사무실 안쪽을 향해 보는 2,4인데 김대리가 사무실 내근직이 아닐 때 K는 Y대리와 늘 나란히 앉았다. 이 둘은 사이가 좋은 편이다. 김대리가 짜증나게 할 때마다 서로를 다독이며(..) 지내왔다는 것을 나는 이 회사에 입사하고 첫 워크샵에 알아버렸다. (물론 이들은 그 일을 내가 알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 둘은 건물 뒤에서 조심히 얘기했지만 그게 바로 내 방 앞이었다는 사실을 모를 테니(...)) 무튼 김대리의 내근이후로 원래는 Y대리의 자리인 4는 주인이 올 때까지 늘 비어있었다. K는 차라리 김대리와 등지고 가장 먼 자리인 3을 선택한 것이다. 

이거라면 심리학을 깊게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알 것이다. K가 가진 김대리에 대한 적대감이나 경계를. 하루종일 사무실에 있으면서 말을 안 섞은 것은 아니겠지만 부러 말을 걸지 않으면 대화를 하기 힘든 위치이다. 게다가 나는 도시락으로 점심면제라는 특권을 받았지만 K는 피할데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김대리의 개소리는 점심시간에 최고조를 이룬다. 내 일생에 주변 환경 때문에 음식을 소화 못해서 위장병이 생길 것 같은일은 단연코 없었던 튼튼한 위를 자랑하는 나는 김대리 때문에 차라리 점심은 굶는 것이 낫다고도 생각했을 정도다.   

거기에 K의 급작스런 퇴사 발언의 근원이 김대리에게 있다는 것을 직감한 것은 바로 옆에 살아있는 예로 재입사한 Y대리가 있는 것이다. 친구랑 창업을 하겠다고 퇴사했지만 1년만에 돌아온 Y대리는 김대리가 바로 위 사수. 아무도 쉴드 처줄 사람이 없었다. 밖에만 나돌아 다니니 며칠 그러다 마는거라고 생각하는거지. 막상 눈 앞에 안보이니까. 무튼 원인을 제공했던 김대리와 안마주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Y대리가 사무실 피신을 생각했던 것도 나름 납득이 간다. 이렇게 김대리 내근직의 첫 희생자가 나오게 된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무튼 그건 그건데. 

이직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예의가 필요하지. 당장 5월에 첫출근 하자마자 10일까지만 나오겠다니 직장이 무슨 애들 장난인 줄 아나. 3년을 넘게 회사를 다녀놓고도 그걸 모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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