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적이

100810 전화번호

오후3시 2010. 8. 10. 17:29


_아침부터 짜증이 솟구쳤다. 지지난달부터 아부지한테서 K가 내 번호 알려달라고 했다고 말을 전해줬던 그 순간부터, 멍 때리던 와중에도 '뭣하러' 하고 대꾸했는데 아직도 징징대는 모양. 참다 못한 아부지도 결국 그 문자 메세지를 '전달'로 보냈는데 말 그대로 '전달'이어서 상대방의 번호는 찍히지 않았다. 아부지 선에서 그냥 나한테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끝낼 셈인 요량이었던 것 같은데, 번호 안 찍혔으니 다시 보내란 말도 하지 않았다. 일단 K의 번호 따위 내가 알고 싶지 않고. 


K는 나보다 더 자주 전화번호를 바꿨다. 새 핸드폰이 나오면 멀쩡한 걸 고장내서라도 가지고 싶은 핸드폰을 사고야 마는 K는 (게다가 K의 말이라면 오냐오냐 공주님 떠받들 듯 하는 부모가 있으니 본인의 경제력 따위 바닥을 기어도 그건 정말 별 문제도 아니다) 핸드폰 번호가 바뀔 때 마다 나에게 전체문자를 보냈다. 나 번호 바꿨다. 그런 문자도 아니다. 정말로 한꺼번에 모든 사람에게 돌린 듯한 무성의한 문자와 명절마다 지속되는 스팸과 동급의 이모티콘 투성의 안부문자. '이모티콘 = 스팸' 으로 분류하는 나는 당연히 답장을 하지 않았고 어느 날인가 왜 답장을 안하냐고 따지듯이 묻는 K에게 그야말로 '개지랄'을 하며 안부문자 보내지 말라고 경고했다. (여기선 물론 내 지랄같은 성격을 인정한다. 그깟 이모티콘 문자 지우면 그만이지만, 볼 때마다 짜증이 난다. 그 것들은 스팸보다 더 하다. 스팸이라면 필터라도 해 놓으면 그만이지만, 언제 어떻게 변형될 지 모르는 이모티콘 문자는 대체 뭘 필터링 해야 한단 말인가.) 그게 3년 전인지, 4년 전인지 기억도 가물가물 하다. 그 이후로 K와 얼굴을 본게 한 번 이고, 문자를 보낸 것은 두 번 이다. 두 번 다, 왜 연락을 안해. 정도. 그 텀은 1년을 훌쩍 넘는다. 나는 씹었다. 당신도 연락 안했다. 전화도 아니고 고작 문자로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짜증이 나고, 연락할 일도 없고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물을 여력은 더더욱 없다. K의 전화번호를 그나마 계속 가지고 있었던 건 전화가 오면 안 받으려고 한 거다. 하지만 전화따위 오지 않았지.. ㅋㅋ....ㅋ..전화도 문자도 연락도 안하면서 늘상 자신이 한번 연락할 때되면 온갖 생색을 내면서, (나니까 너를 챙기는 거다 라는 식의 오만함? 아 진짜 됐거든, 하고 양 손바닥을 치켜세우고 싶다.) 통화란 걸 한다고 해도 나는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소식들을 억지로 전해듣게 되서 나는 실제로 그 빌어먹을 새끼들이 어디서 뒈지건 상관없다고 말했고, 그 걸 K도 알아들은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K와의 접점은 그 모든게 너무 과도하게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거다. 그래서 난 그 흐름을 자르려는 거고.        


내 전화번호 알아서 뭐 할 건데. 중간에 끼어있는 사람 불편하게 무슨 짓이래, 그게. 결국 K와 나 사이에서 갈등하며 제일 폭발인 건 몹시 선량하신 아부지 일텐데. 일단 죄송한 마음은 있지만, 아부지 성격도 그닥 딱 부러지지 못해서 그런 걸거다. 나이도 반토막이나 어린게 따박따박, 상대가 귀찮아하는 지 곤란한지 조차 생각할 틈도 없는 K한테 그렇게 절절하는 것도 나는 사실 몹시 화가 난다.      


니가 무슨 얘길 할 줄 아는데 차피 시간이 지나면 나 같은게 어디에서 뭘 하며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도 않을거면서 채권자처럼 전화번호 캐 묻고 다니지 마라. 제발. 난 너한테 빚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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